
폴 볼커는 미국이 유명한 경제학자입니다. 1927년생이고 2019년 사망하셨어요. 볼커는 지미 카터 대통령 시기에 임명된 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에도 연임하면서 8년간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재임한 인물입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기, 오일쇼크 등으로 인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폭등하던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에 화폐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안정화하는데 성공하였죠.
볼커의 이름에는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세계 경제를 사실상 지휘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위원과 위원장은 매파(Hawk), 비둘기파(Dove), 박쥐파(Swinger) 성향별로 나뉘는데, 통화정책 결정에서 매파는 물가안정 및 경기안정을 중시하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긴축을 선호하고, 반면 비둘기파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더라도 완전고용과 경기부양을 강조하는 '완화' 선호 인물을 뜻합니다. 볼커는 매파에 속하는 인물이였습니다.
1. 볼커의 시간
잠시 1970년대로 돌아가서 볼커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볼커는 1979년 10월 6일 경기침체 상황임에도 기준금리를 15.5%로 4%포인트 올리는 조치를 단행합니다. 이때 당시 언론은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금리를 올리자 일반 은행금리는 무려 20% 가까이 뛰어올랐어요. 볼커의 고금리정책에 대해 카터 행정부는 몹시 불쾌해했지만 카터는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주기 위해 볼커의 정책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카터가 재선에 실패하고 대신 레이건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볼커는 고금리 정책을 더욱 독하게 밀어붙였어요. 1981년 6월에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리는 무서운 결단을 한거지요. 볼커 의장은 ‘철의 볼커’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을 포함, 누가 뭐라고 해도 소신을 꺾지 않고 강력한 금리인상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당시 레이건의 참모들은 “볼커 연준 의장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카터처럼 연임에 실패한다”는 경고를 쏟아냈지만, 레이건은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 개입하지 않았고 결국 볼커는 1981년 기준금리를 21.5%까지 올렸어요. 이렇게 고금리는 3년간 지속되었어요.

1981년, 빚더미에 앉게 된 미국 농민들이 대거 트랙터를 몰고 워싱턴으로 상경했고 도심 한복판을 행진하고 연준 건물을 봉쇄하며 볼커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지요.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사상 초유의 고금리 직격탄을 맞고 소속 회사가 문을 닫자 앙심을 품은 한 남자는 연준(FRB) 건물에 무기를 들고 난입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키가 2m가 넘는 볼커는 재직 중에 권총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 정도로 온갖 시위와 살해 위협에 시달렸어요. 이자율이 20% 선으로 치솟으며 실업률은 10%를 넘어섰고 이로 인해 미국인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소비는 급락했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이나 건설회사 등은 파산 상태로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아픈 일이지만 인플레이션을 잡지 않고서는 미국 경제는 장래가 없다는 것이 볼커의 생각이었지요.
1981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은행 예금이자가 높으니 돈들이 은행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준금리 21.5%와 그 무렵의 인플레이션 14% 차이만 해도 7%포인트가 넘는 고금리였어요. 시중 유동성이 줄어드니 인플레이션이 잡히기 시작했어요. 인플레이션율이 한 해 전의 14.6%에서 9%로 꺾였고 1982년에는 4%로 잦아들었고, 이듬해에는 2.36%까지 떨어졌습니다.
연준은 긴축통화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이겨냈지요. 폴 볼커가 경제가 충분히 고통받았다는 판단 아래 긴축을 풀자 경제는 힘차게 되살아났습니다. 1980년 4월 817포인트까지 내려갔던 다우지수가 1983년 3월 1130포인트까지 상승했습니다.
불안한 시기가 지나자 시장은 미국 200년 역사상 최고라 할 정도의 강세장이 시작되었어요. 주식투자자들은 꾸준히 늘어나 1985년 말에는 4000만명을 넘어서면서, 1987년 1월 8일에는 다우지수 2000선을 돌파했고 1000선을 돌파하는 데 76년이 걸렸고, 2000선을 돌파하는 데는 14년이 걸렸습니다. 이때가 미국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였는데. 볼커는 1987년까지 8년 동안 연준 의장을 지냈습니다. 이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후임으로 올라서고 볼커가 이루어 놓은 안정적인 경제 기반을 토대로 경쟁력 있게 미국 경제를 이끌었습니다.
무섭지만 결국 국가의 장래를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금리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은거죠. 물론 레이건도 대단한 대통령입니다. 재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버텨냈으니까요.

2. 부동산 대출 금리 (주택담보대출)
지금 미국은 이번 5월 FOMC회의에서 50bp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오늘 금통위에서 0.25%인상하여 기준금리가 1.5%가 되었지요.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직후 서울 도심에 있는 공인중개사무소들에는 매수 시점을 고민하는 실수요자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날 한은은 지난해 8월 이후 네 번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1년도 안돼 기준금리가 연 0.5%에서 연 1.5%로 올랐습니다. 5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0년 만에 최고치인 연 3%대까지 급등하면서 시중은행의 주택대출 금리도 덩달아 오르고 있습니다.

이에 대출금이 역시 연동되고 있습니다. KB국민·우리·신한·하나·NH농협 등 국내 5곳 시중은행의 주택대출 금리(고정 금리 5년 후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혼합형 기준)는 연 3.90~6.45%입니다. 신용등급이 가장 우수한 차입자들에게 제공되는 주택대출 금리도 연 4% 안팎입니다. 시중은행들이 우대 금리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주택대출 금리를 조금씩 낮추고 있지만 시장금리를 반영한 금리 상승 폭은 더 크게 나타나고 있어요.
당분간 이런 주택대출 금리 상승세는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이유로 예상보다 빠른 긴축을 단행하고 있는 데다 한국은행 역시 고(高)물가, 한·미 금리 역전 등을 감안해 본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어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대략 2.75 ~ 3%로 예상되면서 연내 기준금리가 연 2%에 이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미국금리인상속도에 따라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지금 볼커 모멘트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금리인상의 당위성을 만들기 위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주택대출 금리 상승 속도는 올 들어 더 빠르고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8개월 간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인상돼 1인당 64만4000원의 이자를 더 부담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3. 주택경기와 담보대출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올라서 죽겠다고 하였지만, 안정화되던 집값이 재건축을 중심으로 서울지역 집값이 다시 상승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가파른 금리 인상은 아파트 분양·청약 시장에 큰 영향을 줍니다. 지난해 말부터 집값이 고점에 달했다는 인식이 퍼졌는데 금리 인상까지 더해져 청약 열기까지 꺽여있는 상태입니다.
이달 초 분양한 서울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에선 대거 미계약 물량이 나와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어요. 이마저도 모집 물량을 다 채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올해 서울 첫 분양으로 관심을 받았던 미아동 북서울자이폴라리스에서도 미계약 물량이 나와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구요. 수도권과 지방 일부 단지에선 이른바 '로또 줍줍'이라고 불렸던 무순위 청약마저 줄줄이 미달 사태를 빚고 있는겁니다.

지금 영끌로 집을 구입하고 앞으로도 집값상승을 예상하는 분들이 많은데.. 한동안은 이자 부담을 감당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볼커모멘트처럼 금리인상이 인플레이션이 잡힐때까지 진행한다면 이자부담으로 집을 팔아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주택대출 금리 상승에 따른 차입자들의 심리적 부담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맞물려 구매 심리가 더 위축되면 거래 절벽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재건축 이슈가 있는 서울 강남권 단지를 빼면 부진한 주택 매매 거래량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여지고 있어요.
당분간 새 정부의 규제 완화를 기대해서 집값상승을 예상하기보다는 금리 상승에 따른 실수요자 중심의 구매력 저하가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거래 시장이 얼어붙을 가능성이 있지만 자금 여력이 있는 실수요자들은 매수를 적극 고려하면 좋을 시기일 수도 있지만, 이미 너무 올라버린 집을 실수요자가 대출없이 구입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네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볼커의 시간이 다시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